추사 김정희에게 정기를 준 충남 예산군의 추사고택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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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에게 정기를 준 충남 예산군의 추사고택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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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추사고택이 소재해 있다. 추사고택은 조선 후기 서예가이며 금석학자인 김정희가 태어난 집이다. 추사고택 왼쪽 문밖에 우물이 한 개 있다.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기 직전에 집 뒤뜰에 있는 우물이 갑자기 말라 버렸다. 그리고 김정희가 태어나고 나서는 추사고택 우물에 물이 다시 찼다고 한다. 곧 추사 김정희는 용궁면 일대 물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현재 추사고택 뒤에 있는 우물은 추사 김정희가 태어날 때 있었던 우물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사용했던 우물자리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소재하는 추사고택과 우물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龍宮里)에 추사고택(秋史故宅)이 소재해 있다. 추사고택은 조선 후기 서예가이며 금석학자인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태어난 집이다. 추사고택이 위치한 신암면 용궁리는 ‘중룡(中龍)’과 ‘궁룡(宮龍)’을 병합하면서 생긴 지명이다. 용궁리에는 그 외에도 ‘상룡(上龍)’이라는 마을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집집마다 샘이 있다고 해서 ‘가구샘이마을’ 또는 ‘호정(戶井)’이라 부르는 마을도 있다. 곧 완만한 구릉성 지대가 대부분인 전형적인 농촌인 용궁리는 논농사가 발달한 마을이다. 그렇기에 물이 중요하고, 많이 요구되는 마을이다. 용과 관련한 지명 또는 우물이 발달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추사고택은 김정희의 증조부이자 영조의 부마(駙馬:사위)이기도 했던 김한신(金漢藎:1720~1758)이 건립하였다. 영조의 부마가 되면서 하사받은 집이라고 전한다. 집을 지을 때 서울에서 경공장(京工匠:조선 시대 궁궐에서 필요한 물품을 제작하는 수공업자)이 내려오고, 집을 짓는 비용은 “충청도의 53개 고을에서 한 칸씩을 부조하여 53칸짜리 저택을 지었다”라고 한다.
물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추사 김정희
현재 추사고택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추사고택의 건물 전체가 서에서 동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다. 안채와 대청은 동쪽을 향하고, 사랑채와 안채의 각 방들은 남향을 하고 있다. 사랑채는 ㄱ자형으로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별당채와 같은 기능으로 안채와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각 방 앞으로 툇마루가 있다. 툇마루를 통해 서로 왕래할 수 있게 건축하였다. 한편, 추사고택 왼쪽 문밖에 우물이 한 개 있다.
추사 김정희는 1786년(정조10) 6월 3일 아버지 김노경(金魯敬)과 어머니 기계유씨(棋溪兪氏)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추사 김정희의 출생과 추사고택 우물이 연계된 설화가 한편 전해진다. “추사 김정희는 어머니 뱃속에서 스물넉 달 만에 태어났다. 추사 김정희가 태어날 때, 집 뒤뜰에 있는 우물이 갑자기 말라 버렸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추사고택 뒷산인 “용산(龍山)과 용산의 조산이라고 할 수 있는 팔봉산(八峰山)에 있던 풀과 나무들이 모두 시들었다”한다. 한편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고 나서는 바로 “추사고택의 우물에 물이 차고, 용산과 팔봉산의 나무와 풀들도 생기(生氣)를 되찾았다”라고 한다. 곧 추사 김정희는 용궁면 일대의 ‘물’과 ‘산’의 정기를 모두 받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부터 대대로 이어지는 우물 자리
추사 김정희가 추사고택 인근 산천의 정기를 모두 끌어당겨 태어났다는 출생담은 민규호 쓴 『완당김공소전』에 기록되어 있다. 유명 인물의 출생담 가운데 산과 물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출생담이 많이 전해진다. 다만 현재 추사고택에 있는 우물은 추사 김정희가 태어날 때 있었던 우물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파놓은 우물을 1976년에 있었던 ‘추사고택 정비사업’ 이전까지 추사고택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고쳐서 사용하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추사고택 건립 때부터 있었던 우물 자리라고 한다.
[출처: 추사 김정희에게 정기를 준 충남 예산군의 추사고택 우물<생명이 솟아나는, 한국의 산과 샘<지역N문화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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